집필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8월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사업가는 회사를 차리고 싶고, 음악인은 자기 앨범을 내고 싶은 것처럼
나는 항상 책을 쓰고 싶었다.
"이야기들은 더 널리 회자되기 위해 소리쳐 운다. 단지 그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stories cry out to be told in such loud voices that, you write them just to shut them up)"
라고 스티븐 킹이 이야기 했었다.
내 속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아주 큰 소리로 울고 있었나보다.
그 울음을 그치게 하는 법은 무작정 쓰는 것 밖에 없었다.
취업준비생 주제에 자소서도 제쳐두고 책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 감사하게도 입사가 확정되어, 홀가분한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입사를 앞두고, 서른살의 나이에, 뒤를 돌아보며 책을 내어놓으니
탈 많았던 인생의 한 막이 끝나고, 새로운 막이 오르는 기분이 든다.
이까짓 책 가지고 드라마틱해지기 싫지만, 약간 그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1인출판이라고 이야기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한번쯤 출판을 생각해보신 분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수있지 않을까 해서 포스팅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관련 자료를 찾는 데에 꽤 애를 먹었었다. 특히 편집, 종이 재질과 출판 과정)
집필 과정 부터 편집, 종이 재질, 표지 디자인, 교열, 출판 과정, 출판 기념회까지.
전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하고자 한다.
이 책이 나에게 더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것이 내 친구들의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졸개인생>
4명의 친구들을 10~20년 가까이 봐온 세월을 소재로 그들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자서전이 도대체 무슨 의미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친구는 "시간이 남아도냐"는 말로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책을 썼던 동기에 대해서는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수차례 설명했지만,
짧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아버지는 정말 지혜롭고, 많은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오신 분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경제력을 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하기도 하고, 유명세도 없기 때문에 평범한 나이많은 아저씨로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아버지를 아는 만큼, 세상이 안다면, 그런 괴리는 없을텐데..
아마 우리 아버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서로를 평가절하 하고, 무시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우리 아버지의 값진 인생 여정에 대해 자서전을 써준다면, 세상은 아버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 친구들만은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유명인이나 대기업 회장들도 대필작가를 통해 자서전 쓰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스스로 나서서 본인의 인생을 기리는 것이지만,
내 친구들은 지인이 먼저 그들의 인생을 인정해주고 자서전을 써주는 셈이 됐다.
그런 면에서, 그런 유명인사들 보다 내 친구 졸개들이 더 대단하지 않은가?
생전에, 타인의 의지에 의해서, 돈 한푼 안들이고, 자서전을 낸 위인은 아직 몇명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과적으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는 뒷부분에서 더 이야기 하겠다.
쓰기 시작하다.
행정병 시절에 익힌 한글 실력을 믿고 한글에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편집은 글이 모두 완성된 이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구체적인 편집 방향도 없이 타자를 두드렸다.
적을 때는 하루에 1시간, 주말에는 10시간동안 쓰기도 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2시간 정도씩은 한 것 같다.
서류탈락에 매일 좌절하며, 잠들기 전에 친구들의 자서전을 쓰며 나도 많은 위안을 얻었다.
덕분에 자존감을 유지하고, 백수 주제에 '할일'을 얻을 수 있었다.
취업이 확정되고나서는 하루종일 쓰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수정되면 이메일로 보내서 백업을 했다.
경솔하게 이메일을 지워서 백업의 절반을 날리고 원본마저 날린 사건도 있었다.
그 때문에 몇 챕터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이메일 백업 파일들
여름에 쓰기 시작해서, 가을이 되어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을 때, 2명 분을 마쳤다.
그러나 편집과 퇴고, 교열, 디자인, 출판 경로 결정 등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사실상 초고의 절반은 곧, 전 과정에서 4분의 1정도의 진척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았을리가 없었고,
만약 책을 완성하는 과정이 어땠는지 먼저 알았다면, 기가 질려서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5개월간 친구들의 인생 여정을 더듬으며
내 머리속은 그들의 인생에 대한 추적과 고민으로 가득했다.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사건의 의미와 미싱 링크들을 수없이 발견했고,
그 연결 고리를 잇기 위해서 항상 '두뇌 풀가동' 상태를 유지했다.
슬쩍 친구들에게 묻기도 하고, 몰래 받아적어가며 자료를 보충했다.
그런 과정에서 내 머리속을 강타한 질문은
"내가 내 친구를 이렇게 몰랐나."라는 것이었다.
그런 글쓰기의 과정 중, 큰 영감을 받을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히히덕거리며 담소를 나누고 집으로 혼자 돌아갈 때!
얼른 돌아가서 더 써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얼마나 신나던지
이런 이야기를 쓰면, 책을 읽을때 친구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만남 후에는 항상그런 기대와 두근거림이 남았다.
서른살의 취업준비생에게는 정말 소중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면접을 망치고 나와서도, 나는 기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초고의 완성
지원한 회사에서 최종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막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그 즈음 초고를 완성했다. 예술의 전당 앞 커피숍과 학교를 전전긍긍한 결과였다.
그러나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책 말미에 전체를 아우르는 마무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4명의 인생사 외에도 '저자 인터뷰'를 넣기로 결정했다.
신문사에 친구들이 많은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줄이야!
경향신문 이혜인 기자는 상상을 초월하게 바쁘고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일처럼 나를 도와주었다. 고마울 따름이다 ㅠㅠ
워낙 바쁘기 때문에 인터뷰를 3차례나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예정보다 한달이나 늦게 신촌의 커피숍에서
2시간여 동안 심층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혜인 기자는 휴식시간을 쪼개서 초고를 모두 읽고 인터뷰를 준비해왔다.
정말 고마웠다
인터뷰 질문을 정리하고 있는 이혜인 기자
이기자의 도움으로 책 말미에 넣을 '저자 인터뷰'가 완성됐고,
본격적으로 교열과 퇴고를 시작했다.
편집을 먼저하면, 나중에 수정사항이 생겼을 시 모두 엉망이 되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컴퓨터에서 수백차례, 정말 수백곳을 퇴고했으나, 매번 고칠 부분이 발견됐다.
빼야할 부분이 보이고, 추가해야할 내용이 생각나고, 퇴고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원고를 작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이미 수백차례 읽은 내용을 또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반복했다.
한 인물에만 몰두해서 한 사람을 쓰고,
다음 사람에 몰두해서 그 사람만 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균형을 잡고, 심한 부분에서 톤 다운하고, 예민한 부분은 지우고, 새로운 삶의 맥락을 발견하며,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취업에 대한 걱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루종일 퇴고에만 매달렸다.
여친느님에게 먼저 공개해서 피드백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제3자의 입장에서 각 인물의 밸런스를 조정해주고, 소중한 의견을 추가해 주었다.
독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며 글을 썼고, 수정에 수정을 반복했지만,
나는 내 글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지 예상도 못하고 있었다.
단지, 내 알량한 추측으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수위 조절에 매달렸다.
퇴고와 디자인
아무리 퇴고를 해도 끝이 없었다. 문제는 컴퓨터 모니터로는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종이에 출력된 글로 퇴고를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책 사이즈로 편집하기 전, A4로 출력한 초고
종이로 글을 보니 한결 수월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고 수정 사항을 표시하면
거의 하루가 다 지나갔다. 하루에 2독도 힘들었다.
온종일 커피숍에서 원고를 훑으며 고치고 또 고쳤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처를 받겠다."
"이걸 써도 되나?"
"어떤 이야기를 더 추가해야 할까..."
와 같은 고민들이 머리속에 항상 가득했다.
초고에 표시한 수정 사항들, 첫장부터 끝까지 한페이지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없었다.
초고를 완성하기 전부터 표지 디자인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었다.
디자인은 책의 주인공 중 한명인 왈구에게 부탁했다.
디자인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나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한 이미지밖에 없었고, 왈구의 조언 덕분에 구체적인 디자인 방향을 세울 수 있었다.
그도 바쁘기 때문에, 내가 점심시간에 그의 회사에 찾아가 함께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교보문고를 돌아보기도 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을 모니터링하며, 새삼 디자인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었다.
원체 감각이 좋은 놈이라, 디자인에 대한 큰 걱정은 접어둘 수 있었다.
그는 황금같은 주말을 쪼개서,표지 시안들을 만들어 주었다.
이 과정도 한달이 넘게 걸렸다.
이혜인 기자와 인터뷰할 당시에는 이미 몇가지 구체적인 시안들이 나오고 있었다.
사실 나는 조금 무게감 있는 표지를 원했지만, 왈구는 눈에 잘 띄고 발랄한 표지를 만들어야한다고 충고해줬다.
결국 전문가인 그의 말을 따랐고, 결과적으로 역시 그가 옳았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했다면, <졸개인생>은 아주 우중충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표지 시안들(얼굴 그림은 왈구의 9살배기 아들, 다안이의 실력이다.)
디자인 회의를 거듭하며 기존의 시안에서 약간 발전시켜 표지를 완성했다.
그러나 표지는 디자인의 일부일 뿐이었다.
뒷면도 있을 뿐더러, 책의 앞, 뒤 날개도 중요했다.
책의 날개에 들어가는 내용까지 모두 완성을 하고,
우리는 킨코스에서 실제 표지와 흡사한 재질로 출력 테스트를 해봤다.
내가 고른 표지의 종이는 완전한 흰색이 아니라, 옅은 아이보리 색상이기 때문에
모니터로 보는 것과는 출력물은 다를 수도 있다.
실제로는 어떤 색상으로 나올지, 책의 형태로 디자인은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표지 출력 테스트. 알맞은 노란색을 고르기 위해 다양한 노란색을 출력해보기도 했다.
실제 책의 앞, 뒤 날개 부분
뒷 날개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음악이 재생되게 했다.
원래는 이렇게 전용 플레이어와 곡 목록이 나오도록 하려고 했으나, 아이폰에서는 실행되지 않았다.
이 문제와 씨름하느라 하루를 통채로 날렸고, 결국 유투브 리스트로 연결 시켰다.
표지와 본문 종이의 선택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종이들이 있으나, 컴퓨터로는 그것을 직접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출판사를 찾아갔다.
친절한 직원께서 견본을 보여주셨고, 나는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표지와 본문 용지를 고를 수 있었다.
표지는 랑데뷰 210g짜리, 본문은 미색모조지 100g으로 정했다.
본문 같은 경우는 백색으로 할 경우, 값싼 프린트물로 보이고,
미색모조지80g도 쓸만 하지만, 뒤가 비친다는 단점이 있었다.
표지는 디자이너 왈구의 의견을 반영해서, 무광 코팅을 했다.
유광보다는 더 질감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편집과 교열
디자인과 종이 재질을 모두 선택했을 즈음부터
편집과 교열을 시작했다.
A4 사이즈에 원고를 썼기 때문에, 출판용으로 완전히 새롭게 편집을 해야했다.
사실 디자인이나 편집, 교열 등은 모두 출판사가 하는 것이지, 작가의 몫은 아니다.
그러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고
나름 할수 있겠다는 용기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 책의 사이즈는 '국판'으로 부르기도 하는 A5사이즈 였다. (148cm x 210cm)
국판 사이즈로 본문을 맞추고, 편집을 시작했다.
편집을 시작하고 사진의 배치부터 고민되기 시작했다.
중간에 줄을 차지하고 넣을지, 아니면 크게 한 면을 모두 차지하게 할지, 여러 방법이 있었다.
시중의 여러 책들을 검토한 결과, 본문의 바깥쪽에 작게 넣는 것이 가장 좋을 것으로 판단됐다.
컴퓨터 상에 있는 사진은 dpi가 200 이하면 크게 출력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선택한 방법이었다.
대부분의 사진은 72dpi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겸사겸사 작은 사이즈로 할 수밖에 없었다.
왼쪽 페이지에는 왼쪽 위에, 오른쪽 페이지에는 오른쪽 위에 배치했다.
사진은 이렇게.
본문과 소제목의 폰트, 그리고 자간, 장평의 조절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고,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행간을 띄우고, 자간과 장평은 줄여야, 가독성이 높아진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당연한 것임에도 난 몰랐다.)
그러나 어느 정도를 줄이고 띄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폰트의 결정도 어려웠다.
방법은 역시 직접 출력해보는 수밖에.
폰트, 장평, 자간 테스트
결국 제목은 윤고딕, 본문은 신명조가 가장 깔끔했고,
자간은 -7, 장평은 97%로 조절했다. 행간은 180으로 꽤 많이 두었다.(한글 기준)
다른 분들은 자간, 장평을 훨씬 더 줄이는 것 같지만, 나는 이 정도가 좋아보였다.
꽤 여러 폰트와 설정값을 주고 출력한 다음 설문조사를 해보았지만, 모두의 대답이 다 달라서 결국 내 생각대로 하기로 했다.
모든 일을 직접 하면서 내 머리속에 있던 생각은
시중의 책에 비해도 손색없는 책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페이지 편집과 같은 부분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했다.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결국 가장 보편적인 페이지 포맷으로 정했다.
왼쪽 페이지에는 책 제목, 오른쪽 페이지에는 챕터명(인물명)
전체적으로 얼추 편집을 마친 후에 교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교열은 정말 곤욕이었다.
아무리 고쳐도 또 나오고, 틀린 맞춤법이 반복됐고, 우스꽝스러운 실수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한글 파일에서 원고를 쓸때는 페이지가 아래로 넘어가기 때문에
"위에 언급했듯이" 아니면 "위에서 말한" 이라고 했었는데
실제 책에서는 옆으로 페이지를 넘기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나 "앞에서 말한"으로 써야했다.
이러한 초보적인 실수가 굉장히 많았다.
결국 또 친절한 여친느님의 도움으로 굉장히 많은 오타와 비문을 수정할 수 있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여친느님은 원고를 꼼꼼히 읽으며 아주 세세하게 메모를 해서 나에게 전해주셨다.
여친느님의 셀수없이 많은 도움들.(페이지, 단락, 줄 수까지 모두 메모해서 수정해주었다)
지옥같았던 교열을 마치고, 책을 찍어낼 곳을 찾아갔다.
처음 종이 재질을 확인한 그 회사였다.
정식으로 바로 출판할까 고민도 했었으나, 예민한 이야기들이 많은 관계로
먼저 소장본만 소량으로 만들어 피드백을 받은 다음,
재수정을 해서 정식 책으로 등록하기로 했다.
정식으로 책 등록을 하는 것은 곧 ISBN넘버를 받는 것으로, 스스로도 할 수 있다.
단, 1인 출판사를 세워서 신고를 해야한다는 껄끄러운 점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그 회사에 대행을 맡기기로 했다.
일단 소량으로 25권만 찍고, 추후에 ISBN을 신청할 예정이다.
편집과 교열을 완성한 한글파일과, 표지 일러스트 파일을 PDF로 변환해서 출판사에 보냈다.
PDF로 변환하는 이유는
한글로 전송할 경우, 폰트가 없을 수도 있고, 버전이나 설정값에 의해서
편집양식이 엉킬수도 있기 때문이다.
PDF변환도 꼬박 이틀이 걸렸다.
챕터 디자인 PDF를 어떻게 중간에 끼워넣을지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사실 쉬운 문제임에도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사진파일로 한글에서 배경을 설정하여 해결했다.
챕터는 이렇게. 사진이어서 글자가 약간 일그러졌다.
책 도착
PDF를 보내고, 나는 친구와 통영으로 여행을 갔다.
5개월 동안 매달린 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다.
(통영 여행은 바로 전에 포스팅 해두었다.)
바다향에 한껏 취해서 서울로 돌아오고 며칠 뒤,
책이 배송왔다!
25권의 초판 소장본
책의 표지와 뒷면
출판기념회
책을 완성하기 한참 전부터, 어떻게 책을 전달해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학교의 고마운 친구가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출판기념회를 하는 게 어떻냐고 조언했고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서 모든 작업을 마치기 위해 노렸했었다.
출판기념회를 4일 앞두고 책이 도착했고,
왈구의 회사를 빌려서 출판기념회 겸 송년회 겸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 수 있었다.
책의 주인공인 4명과, 그들의 가족과 애인, 총 9명을 초대했다.
다른 친구들도 초대하고 싶었으나, 자서전을 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그러지 못했다.
책에서 다루지 못한 친구들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 때문에 글을 쓰는 내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조촐한 테이블 세팅
우리는 바베큐에 대한 로망 때문에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피자나 시켜서 오붓하게 먹으면 되는데,
그릴과 고기, 야채를 사서 발코니에서 굽기로 한 것이었다.
겨울에 야외 바베큐는 할 일이 못된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발코니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문제 없어 보인다.
발코니는 상상을 초월하게 추웠다.
발끝부터 꽝꽝 얼기 시작하는데, 고기는 익지가 않았다.
고기를 그릴에 얹히고 우리는 멀뚱멀뚱 서서 얼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 익은 줄 알고 테이블로 넘겼던 고기조차, 속은 여전히 핏기가 가득했다
핏기 도는 고기도 잘 먹는 친구들
결국 우리는 피자를 시켰다 -.-;
따뜻한 피자에 둘러앉아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왜 바보처럼 한겨울에 밖에서 고기를 구울 생각을 했을까.
아 오랜만에 모여서 얼마나 즐거운 이야기가 많이 오가던지
식사와 담소를 마치고 회의실로 옮겨 책을 공개했다.
5개월 내내 기다린 순간이었다.
책을 들쳐메고 모두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들어선 순간
날 기다리고 있던 케잌 ..
여친느님이 감사하게도 이런 선물을 선사해 주셨다 ㅠㅠ
그리고
세연이가 특별 주문한 컵케잌과, 진아가 직접 구워온 쿠키 세트
풍년이로구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익, 컵케잌, 쿠키를 앞에 두고 책을 공개했다.
어떤 인사말로 책을 소개할까 고민이 많았다.
대단하지도 않은 책을 거창하게 소개할 말도 없어서, 웃긴 영상을 만들어서 프로젝터로 상영했다.
그렇게 소개영상을 틀고 사인한 책을 일일이 전달했다.
책을 전해줄 때, 갑자기 왜 찡해지던지 모르겠다.
5개월 동안 혼자 씨름한 기억이 몰려와서 그랬는지
조촐한 출판기념회에 이렇게 정성껏 준비해온 친구들이 고마워서 그랬는지...
약간은 울컥했다.
받기가 무섭게 읽고 있는 친구들, 불안해하며 서성이는 저자
다같이 한방. 왈구가 티셔츠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훈훈한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책을 전해주지 못한 친구들에게 배달을 다녔다.
본의 아니게 산타마냥 찾아다니면서 한권씩 전달했다.
사진을 찍지 못한 친구들도 많다.
(사진은 쿤타와 이혜인 기자)
감회, 괴로움
책이 완성된 이후에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많았다.
내가 쓴 글을 책으로 읽으며,
책을 읽은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책을 다시 읽어보며,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리뷰는 내가 상상도 못한 부분을 일깨워 주었다.
숙고와 고민을 거듭하면서 썼지만,
나는 모니터에 갇힌채, 실제 활자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도, 이 글이 어떤 일을 불러일으킬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몰랐던 것이다.
나의 졸렬한 시각과 몰지각 때문에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상처를 주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들의 인생을 이기적으로 서술하면서, 그들을 매도했고, 소중한 추억에 마음대로 칼질을 했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온몸이 경직되기도 했다.
내가 읽으면서도 얼마나 후회스러웠던지,
수정할 부분 수십군데가 넘었다.
처음 대강 훑었을 때, 마음에 걸린 부분+오탈자
책은 일방적이다.
저자가 서술하는 대로 인쇄가 되고, 아무도 설명을 덧붙이거나 수정하지 못한다.
왜 더 신중하지 못했는지, 가슴이 아팠다.
나는 친구들의 인생을 인정해주고, 기리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가족들에게 누가 되었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나의 몰지각을 활자로 인쇄해서 배포하는 순간
내 친구는 씻을 수 없는 오해와 불명예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서운하고, 상처를 받는다면
안 쓰느니만 못하다.
마음 같아선 책을 모두 회수하고, 사죄를 하고 싶다.
우리는 서른의 나이에 아직도 성장하고 있고,
친구들간의 관계도 여전히 무르익는 중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친구들을 단정짓고 규정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죽은 인물의 자서전은 가감없이 써야하지만,
살아 있는, 그것도 한창 발전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나는 훨씬 더 신중했어야 했다.
그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본인에 대한 이미지와 가족의 기대치,
그리고 내가 서술한 모습 사이에서 엄청난 간극이 발견되기도 했다.
가족분들께 책을 전달하며 그들이 받게될 실망감을 상상하며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입사를 앞두고, 그래도 갚진 일을 하나 했다고 자축하고 싶었으나,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학교에 마지막으로 가서 짐을 정리하며, 다음 막을 준비했다.
공부는 안하고 <졸개인생>을 썼던 내 자리는
말끔하게 두 묶음으로 정리됐다.
정리하니 이렇게 간촐하다.
책상 정리하듯이
내가 책 속에 너저분하게 벌려놓은 마음의 짐을 쓸어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책의 에필로그를 첨부하여 나의 마음을 다시 전하고 싶다.
비록 오해와 몰지각으로 점철된 책이지만,
오직 사랑으로 썼다는 것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만약 우리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산자락에 은둔하는 처사, 선두는 사대부 성리학자, 왈구는 실용적인 실학자, 현우는 양반집 한량, 염따는 광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속세와 연을 끊고 도를 닦고 있을 것이고, 선두는 유학을 전파하며 고위직으로 승진하여 매우 바쁠 것이다. 왈구는 실학사상을 연구하고 있거나, 겁 없이 폭군에게 충언을 했다가 사형 당했을 지도 모른다. 현우는 한강에 배를 띄워 가야금 연주를 즐기고, 염따는 저잣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관객을 모아 줄타기를 선보이고 있을 것이다.
불과 2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우리는 모두 다른 생활 반경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엄청난 교집합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던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이 책을 쓰며 얻은 것이라면, 그 기적을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친구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인생을 곱씹으며, 커피숍 구석에서 혼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침대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다 우울해져 잠을 설치기도 했다. 알지 못했던 선두의 옛 고민들에 나도 괴로웠고, 왈구의 존경스러운 결단에 다시 감탄했다. 혼자의 힘으로 성취를 이뤄내는 염따가 대단했고, 현우가 나에게 끼친 영향을 살펴볼 때는 가슴 깊이 고마웠다. 퍼즐 조각을 모두 맞추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오듯이, 의미의 조각들을 합치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이다. 친구들의 인생은 마치 하나의 완벽한 예술작품 같이 감동을 전해주었다. 나의 얕은 통찰력과 졸필 때문에,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친구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의 부족함을 용서하길 바란다.
이 책은 친구들의 자서전이고, 나는 그들의 대필 작가이다. 단지 이미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받아 적는 과정이 없었을 뿐이다. 대필 작가로서 나름의 사명감과 친구로서의 사랑을 양분삼아 책을 마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작가, 장 프레보는 “사랑의 편지, 청년은 급하게 읽고, 중년은 천천히 읽고, 노년은 다시 읽는다.”라고 했다. 젊음을 급하게 보내는 것은 프랑스나 한국이나 매한가진가 보다. 나의 사랑으로 쓴 이 책, 급하게 읽었다면 노년의 지혜를 발휘해서 다시 처음부터 읽어봄이 어떨지.
2011년 겨울, 예술의 전당 앞에서
양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