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 한 봉지 by 양성준


공공장소에서 한 봉지씩 도둑질해온 커피믹스가 큰 힘이었다.
누추한 집에서도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다는 든든함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항상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생각들이 있었다.
무엇이 옳은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이 일의 본질이 무언가. 왜 이런가.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을 따져보고, 가치판단을 하고, 깨닫고, 친구들과 나누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이 과정을 위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고, 커피가 필요했고, 그 고민의 결과가 글이나 음악이 되곤 했다.
 
한 마디로, 나는 항상 글감이 있었고
그걸 쓰고, 나누면서 즐거웠다.
나를 유지해온 힘이다.
 
가끔 어떤 음식점에 가면, 벽면에 낙서를 장려하는 흰 벽이 있지 않은가.
그 큰 낙서장을 마주하고 매직펜을 들었을 때의 신나는 기분, “난 무엇이든 쓸 수 있다!”
글을 쓰기 직전의 기분이 그렇다.
 
요새 나를 보면
가치판단을 하는 일이 예전에 비해 참 많이 줄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지만,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글감이 없다.
 
무엇이든 쓸 수 있는 흰 벽을 마주해도
신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참 문제다.

 
 
오랜만에 집에서 커피나 한 잔 하려고
꼬불쳐둔 커피 믹스를 뒤지다가,
요샌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니, 이제 커피도 훔치지 않는다는
씁쓸한 깨달음이...
커피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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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개인생>집필에서 출판기념회까지의 5개월 by 양성준

집필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8월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사업가는 회사를 차리고 싶고, 음악인은 자기 앨범을 내고 싶은 것처럼
나는 항상 책을 쓰고 싶었다.

"이야기들은 더 널리 회자되기 위해 소리쳐 운다. 단지 그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stories cry out to be told in such loud voices that, you write them just to shut them up)"


라고 스티븐 킹이 이야기 했었다.

내 속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아주 큰 소리로 울고 있었나보다. 

그 울음을 그치게 하는 법은 무작정 쓰는 것 밖에 없었다.


취업준비생 주제에 자소서도 제쳐두고 책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 감사하게도 입사가 확정되어, 홀가분한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입사를 앞두고, 서른살의 나이에, 뒤를 돌아보며 책을 내어놓으니
탈 많았던 인생의 한 막이 끝나고, 새로운 막이 오르는 기분이 든다.
이까짓 책 가지고 드라마틱해지기 싫지만, 약간 그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1인출판이라고 이야기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한번쯤 출판을 생각해보신 분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수있지 않을까 해서 포스팅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관련 자료를 찾는 데에 꽤 애를 먹었었다. 특히 편집, 종이 재질과 출판 과정)
집필 과정 부터 편집, 종이 재질, 표지 디자인, 교열, 출판 과정, 출판 기념회까지.
전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하고자 한다.

이 책이 나에게 더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것이 내 친구들의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졸개인생>
4명의 친구들을 10~20년 가까이 봐온 세월을 소재로 그들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자서전이 도대체 무슨 의미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친구는 "시간이 남아도냐"는 말로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책을 썼던 동기에 대해서는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수차례 설명했지만,
짧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아버지는 정말 지혜롭고, 많은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해오신 분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경제력을 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하기도 하고, 유명세도 없기 때문에 평범한 나이많은 아저씨로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아버지를 아는 만큼, 세상이 안다면, 그런 괴리는 없을텐데..
아마 우리 아버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서로를 평가절하 하고, 무시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우리 아버지의 값진 인생 여정에 대해 자서전을 써준다면, 세상은 아버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 친구들만은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유명인이나 대기업 회장들도 대필작가를 통해 자서전 쓰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스스로 나서서 본인의 인생을 기리는 것이지만,
내 친구들은 지인이 먼저 그들의 인생을 인정해주고 자서전을 써주는 셈이 됐다.
그런 면에서, 그런 유명인사들 보다 내 친구 졸개들이 더 대단하지 않은가?
생전에, 타인의 의지에 의해서, 돈 한푼 안들이고, 자서전을 낸 위인은 아직 몇명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과적으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는 뒷부분에서 더 이야기 하겠다.




   쓰기 시작하다.


행정병 시절에 익힌 한글 실력을 믿고 한글에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편집은 글이 모두 완성된 이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구체적인 편집 방향도 없이 타자를 두드렸다.
적을 때는 하루에 1시간, 주말에는 10시간동안 쓰기도 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2시간 정도씩은 한 것 같다.
서류탈락에 매일 좌절하며, 잠들기 전에 친구들의 자서전을 쓰며 나도 많은 위안을 얻었다.
덕분에 자존감을 유지하고, 백수 주제에 '할일'을 얻을 수 있었다.
취업이 확정되고나서는 하루종일 쓰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수정되면 이메일로 보내서 백업을 했다.
경솔하게 이메일을 지워서 백업의 절반을 날리고 원본마저 날린 사건도 있었다.
그 때문에 몇 챕터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이메일 백업 파일들


여름에 쓰기 시작해서, 가을이 되어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을 때, 2명 분을 마쳤다.
그러나 편집과 퇴고, 교열, 디자인, 출판 경로 결정 등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사실상 초고의 절반은 곧, 전 과정에서 4분의 1정도의 진척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았을리가 없었고,
만약 책을 완성하는 과정이 어땠는지 먼저 알았다면, 기가 질려서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5개월간 친구들의 인생 여정을 더듬으며
내 머리속은 그들의 인생에 대한 추적과 고민으로 가득했다.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사건의 의미와 미싱 링크들을 수없이 발견했고,
그 연결 고리를 잇기 위해서 항상 '두뇌 풀가동' 상태를 유지했다.
슬쩍 친구들에게 묻기도 하고, 몰래 받아적어가며 자료를 보충했다.
그런 과정에서 내 머리속을 강타한 질문은
"내가 내 친구를 이렇게 몰랐나."라는 것이었다.

그런 글쓰기의 과정 중, 큰 영감을 받을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히히덕거리며 담소를 나누고 집으로 혼자 돌아갈 때!
얼른 돌아가서 더 써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얼마나 신나던지
이런 이야기를 쓰면, 책을 읽을때 친구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만남 후에는 항상그런 기대와 두근거림이 남았다.
서른살의 취업준비생에게는 정말 소중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면접을 망치고 나와서도, 나는 기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초고의 완성

지원한 회사에서 최종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막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그 즈음 초고를 완성했다. 예술의 전당 앞 커피숍과 학교를 전전긍긍한 결과였다.
그러나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책 말미에 전체를 아우르는 마무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4명의 인생사 외에도 '저자 인터뷰'를 넣기로 결정했다.
신문사에 친구들이 많은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줄이야!
경향신문 이혜인 기자는 상상을 초월하게 바쁘고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일처럼 나를 도와주었다. 고마울 따름이다 ㅠㅠ
워낙 바쁘기 때문에 인터뷰를 3차례나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예정보다 한달이나 늦게 신촌의 커피숍에서
2시간여 동안 심층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혜인 기자는 휴식시간을 쪼개서 초고를 모두 읽고 인터뷰를 준비해왔다.
정말 고마웠다
인터뷰 질문을 정리하고 있는 이혜인 기자


이기자의 도움으로 책 말미에 넣을 '저자 인터뷰'가 완성됐고,
본격적으로 교열과 퇴고를 시작했다.
편집을 먼저하면, 나중에 수정사항이 생겼을 시 모두 엉망이 되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컴퓨터에서 수백차례, 정말 수백곳을 퇴고했으나, 매번 고칠 부분이 발견됐다.
빼야할 부분이 보이고, 추가해야할 내용이 생각나고, 퇴고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원고를 작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이미 수백차례 읽은 내용을 또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반복했다.
한 인물에만 몰두해서 한 사람을 쓰고,
다음 사람에 몰두해서 그 사람만 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균형을 잡고, 심한 부분에서 톤 다운하고, 예민한 부분은 지우고, 새로운 삶의 맥락을 발견하며,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취업에 대한 걱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루종일 퇴고에만 매달렸다.
여친느님에게 먼저 공개해서 피드백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제3자의 입장에서 각 인물의 밸런스를 조정해주고, 소중한 의견을 추가해 주었다.

독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며 글을 썼고, 수정에 수정을 반복했지만,
나는 내 글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지 예상도 못하고 있었다.
단지, 내 알량한 추측으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수위 조절에 매달렸다.




   퇴고와 디자인

아무리 퇴고를 해도 끝이 없었다. 문제는 컴퓨터 모니터로는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종이에 출력된 글로 퇴고를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책 사이즈로 편집하기 전, A4로 출력한 초고


종이로 글을 보니 한결 수월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고 수정 사항을 표시하면
거의 하루가 다 지나갔다. 하루에 2독도 힘들었다.
온종일 커피숍에서 원고를 훑으며 고치고 또 고쳤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처를 받겠다."
"이걸 써도 되나?"
"어떤 이야기를 더 추가해야 할까..."
와 같은 고민들이 머리속에 항상 가득했다.
초고에 표시한 수정 사항들, 첫장부터 끝까지 한페이지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없었다.


초고를 완성하기 전부터 표지 디자인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었다.
디자인은 책의 주인공 중 한명인 왈구에게 부탁했다.
디자인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나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한 이미지밖에 없었고, 왈구의 조언 덕분에 구체적인 디자인 방향을 세울 수 있었다.
그도 바쁘기 때문에, 내가 점심시간에 그의 회사에 찾아가 함께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교보문고를 돌아보기도 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을 모니터링하며, 새삼 디자인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었다.
원체 감각이 좋은 놈이라, 디자인에 대한 큰 걱정은 접어둘 수 있었다.
그는 황금같은 주말을 쪼개서,표지 시안들을 만들어 주었다.
이 과정도 한달이 넘게 걸렸다.
이혜인 기자와 인터뷰할 당시에는 이미 몇가지 구체적인 시안들이 나오고 있었다.
사실 나는 조금 무게감 있는 표지를 원했지만, 왈구는 눈에 잘 띄고 발랄한 표지를 만들어야한다고 충고해줬다.
결국 전문가인 그의 말을 따랐고, 결과적으로 역시 그가 옳았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했다면, <졸개인생>은 아주 우중충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표지 시안들(얼굴 그림은 왈구의 9살배기 아들, 다안이의 실력이다.)


디자인 회의를 거듭하며 기존의 시안에서 약간 발전시켜 표지를 완성했다.
그러나 표지는 디자인의 일부일 뿐이었다.
뒷면도 있을 뿐더러, 책의 앞, 뒤 날개도 중요했다.
책의 날개에 들어가는 내용까지 모두 완성을 하고,
우리는 킨코스에서 실제 표지와 흡사한 재질로 출력 테스트를 해봤다.
내가 고른 표지의 종이는 완전한 흰색이 아니라, 옅은 아이보리 색상이기 때문에
모니터로 보는 것과는 출력물은 다를 수도 있다.
실제로는 어떤 색상으로 나올지, 책의 형태로 디자인은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표지 출력 테스트. 알맞은 노란색을 고르기 위해 다양한 노란색을 출력해보기도 했다.


실제 책의 앞, 뒤 날개 부분
뒷 날개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음악이 재생되게 했다. 


원래는 이렇게 전용 플레이어와 곡 목록이 나오도록 하려고 했으나, 아이폰에서는 실행되지 않았다.
이 문제와 씨름하느라 하루를 통채로 날렸고, 결국 유투브 리스트로 연결 시켰다.


표지와 본문 종이의 선택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종이들이 있으나, 컴퓨터로는 그것을 직접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출판사를 찾아갔다.
친절한 직원께서 견본을 보여주셨고, 나는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표지와 본문 용지를 고를 수 있었다.
표지는 랑데뷰 210g짜리, 본문은 미색모조지 100g으로 정했다.
본문 같은 경우는 백색으로 할 경우, 값싼 프린트물로 보이고,
미색모조지80g도 쓸만 하지만, 뒤가 비친다는 단점이 있었다.
표지는 디자이너 왈구의 의견을 반영해서, 무광 코팅을 했다. 
유광보다는 더 질감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편집과 교열

디자인과 종이 재질을 모두 선택했을 즈음부터
편집과 교열을 시작했다.
A4 사이즈에 원고를 썼기 때문에, 출판용으로 완전히 새롭게 편집을 해야했다.
사실 디자인이나 편집, 교열 등은 모두 출판사가 하는 것이지, 작가의 몫은 아니다.
그러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고
나름 할수 있겠다는 용기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 책의 사이즈는 '국판'으로 부르기도 하는 A5사이즈 였다. (148cm x 210cm)
국판 사이즈로 본문을 맞추고, 편집을 시작했다.

편집을 시작하고 사진의 배치부터 고민되기 시작했다.
중간에 줄을 차지하고 넣을지, 아니면 크게 한 면을 모두 차지하게 할지, 여러 방법이 있었다.
시중의 여러 책들을 검토한 결과, 본문의 바깥쪽에 작게 넣는 것이 가장 좋을 것으로 판단됐다.
컴퓨터 상에 있는 사진은 dpi가 200 이하면 크게 출력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선택한 방법이었다.
대부분의 사진은 72dpi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겸사겸사 작은 사이즈로 할 수밖에 없었다.
왼쪽 페이지에는 왼쪽 위에, 오른쪽 페이지에는 오른쪽 위에 배치했다.
사진은 이렇게.

본문과 소제목의 폰트, 그리고 자간, 장평의 조절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고,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행간을 띄우고, 자간과 장평은 줄여야, 가독성이 높아진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당연한 것임에도 난 몰랐다.)
그러나 어느 정도를 줄이고 띄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폰트의 결정도 어려웠다.
방법은 역시 직접 출력해보는 수밖에.
폰트, 장평, 자간 테스트

결국 제목은 윤고딕, 본문은 신명조가 가장 깔끔했고,
자간은 -7, 장평은 97%로 조절했다. 행간은 180으로 꽤 많이 두었다.(한글 기준)
다른 분들은 자간, 장평을 훨씬 더 줄이는 것 같지만, 나는 이 정도가 좋아보였다.
꽤 여러 폰트와 설정값을 주고 출력한 다음 설문조사를 해보았지만, 모두의 대답이 다 달라서 결국 내 생각대로 하기로 했다.

모든 일을 직접 하면서 내 머리속에 있던 생각은
시중의 책에 비해도 손색없는 책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페이지 편집과 같은 부분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했다.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결국 가장 보편적인 페이지 포맷으로 정했다.
왼쪽 페이지에는 책 제목, 오른쪽 페이지에는 챕터명(인물명)


전체적으로 얼추 편집을 마친 후에 교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교열은 정말 곤욕이었다.
아무리 고쳐도 또 나오고, 틀린 맞춤법이 반복됐고, 우스꽝스러운 실수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한글 파일에서 원고를 쓸때는 페이지가 아래로 넘어가기 때문에
"위에 언급했듯이" 아니면 "위에서 말한" 이라고 했었는데
실제 책에서는 옆으로 페이지를 넘기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나 "앞에서 말한"으로 써야했다.
이러한 초보적인 실수가 굉장히 많았다.
결국 또 친절한 여친느님의 도움으로 굉장히 많은 오타와 비문을 수정할 수 있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여친느님은 원고를 꼼꼼히 읽으며 아주 세세하게 메모를 해서 나에게 전해주셨다.
여친느님의 셀수없이 많은 도움들.(페이지, 단락, 줄 수까지 모두 메모해서 수정해주었다)


지옥같았던 교열을 마치고, 책을 찍어낼 곳을 찾아갔다.
처음 종이 재질을 확인한 그 회사였다.
정식으로 바로 출판할까 고민도 했었으나, 예민한 이야기들이 많은 관계로
먼저 소장본만 소량으로 만들어 피드백을 받은 다음,
재수정을 해서 정식 책으로 등록하기로 했다.
정식으로 책 등록을 하는 것은 곧 ISBN넘버를 받는 것으로, 스스로도 할 수 있다.
단, 1인 출판사를 세워서 신고를 해야한다는 껄끄러운 점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그 회사에 대행을 맡기기로 했다.

일단 소량으로 25권만 찍고, 추후에 ISBN을 신청할 예정이다.
편집과 교열을 완성한 한글파일과, 표지 일러스트 파일을 PDF로 변환해서 출판사에 보냈다.
PDF로 변환하는 이유는
한글로 전송할 경우, 폰트가 없을 수도 있고, 버전이나 설정값에 의해서
편집양식이 엉킬수도 있기 때문이다.
PDF변환도 꼬박 이틀이 걸렸다. 
챕터 디자인 PDF를 어떻게 중간에 끼워넣을지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사실 쉬운 문제임에도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사진파일로 한글에서 배경을 설정하여 해결했다.
챕터는 이렇게. 사진이어서 글자가 약간 일그러졌다.




   책 도착

PDF를 보내고, 나는 친구와 통영으로 여행을 갔다.
5개월 동안 매달린 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다.
(통영 여행은 바로 전에 포스팅 해두었다.)

바다향에 한껏 취해서 서울로 돌아오고 며칠 뒤,
책이 배송왔다!
25권의 초판 소장본

책의 표지와 뒷면





   출판기념회

책을 완성하기 한참 전부터, 어떻게 책을 전달해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학교의 고마운 친구가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출판기념회를 하는 게 어떻냐고 조언했고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서 모든 작업을 마치기 위해 노렸했었다.
출판기념회를 4일 앞두고 책이 도착했고,
왈구의 회사를 빌려서 출판기념회 겸 송년회 겸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 수 있었다.
책의 주인공인 4명과, 그들의 가족과 애인, 총 9명을 초대했다.
다른 친구들도 초대하고 싶었으나, 자서전을 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그러지 못했다.
책에서 다루지 못한 친구들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 때문에 글을 쓰는 내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조촐한 테이블 세팅

우리는 바베큐에 대한 로망 때문에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피자나 시켜서 오붓하게 먹으면 되는데,
그릴과 고기, 야채를 사서 발코니에서 굽기로 한 것이었다.
겨울에 야외 바베큐는 할 일이 못된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발코니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문제 없어 보인다.


발코니는 상상을 초월하게 추웠다.
발끝부터 꽝꽝 얼기 시작하는데, 고기는 익지가 않았다.
고기를 그릴에 얹히고 우리는 멀뚱멀뚱 서서 얼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 익은 줄 알고 테이블로 넘겼던 고기조차, 속은 여전히 핏기가 가득했다
핏기 도는 고기도 잘 먹는 친구들


결국 우리는 피자를 시켰다 -.-;
따뜻한 피자에 둘러앉아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왜 바보처럼 한겨울에 밖에서 고기를 구울 생각을 했을까.
아 오랜만에 모여서 얼마나 즐거운 이야기가 많이 오가던지


식사와 담소를 마치고 회의실로 옮겨 책을 공개했다.
5개월 내내 기다린 순간이었다.
책을 들쳐메고 모두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들어선 순간
날 기다리고 있던 케잌 ..
여친느님이 감사하게도 이런 선물을 선사해 주셨다 ㅠㅠ

그리고
세연이가 특별 주문한 컵케잌과, 진아가 직접 구워온 쿠키 세트


풍년이로구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익, 컵케잌, 쿠키를 앞에 두고 책을 공개했다.
어떤 인사말로 책을 소개할까 고민이 많았다.
대단하지도 않은 책을 거창하게 소개할 말도 없어서, 웃긴 영상을 만들어서 프로젝터로 상영했다.
그렇게 소개영상을 틀고 사인한 책을 일일이 전달했다.
책을 전해줄 때, 갑자기 왜 찡해지던지 모르겠다.
5개월 동안 혼자 씨름한 기억이 몰려와서 그랬는지
조촐한 출판기념회에 이렇게 정성껏 준비해온 친구들이 고마워서 그랬는지...
약간은 울컥했다.
받기가 무섭게 읽고 있는 친구들, 불안해하며 서성이는 저자


다같이 한방. 왈구가 티셔츠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훈훈한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책을 전해주지 못한 친구들에게 배달을 다녔다.
본의 아니게 산타마냥 찾아다니면서 한권씩 전달했다.
사진을 찍지 못한 친구들도 많다.
(사진은 쿤타와 이혜인 기자)





   감회, 괴로움

책이 완성된 이후에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많았다.
내가 쓴 글을 책으로 읽으며,
책을 읽은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책을 다시 읽어보며,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리뷰는 내가 상상도 못한 부분을 일깨워 주었다.

숙고와 고민을 거듭하면서 썼지만,
나는 모니터에 갇힌채, 실제 활자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도, 이 글이 어떤 일을 불러일으킬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몰랐던 것이다.
나의 졸렬한 시각과 몰지각 때문에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상처를 주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들의 인생을 이기적으로 서술하면서, 그들을 매도했고, 소중한 추억에 마음대로 칼질을 했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온몸이 경직되기도 했다.

내가 읽으면서도 얼마나 후회스러웠던지,
수정할 부분 수십군데가 넘었다.
처음 대강 훑었을 때, 마음에 걸린 부분+오탈자


책은 일방적이다.
저자가 서술하는 대로 인쇄가 되고, 아무도 설명을 덧붙이거나 수정하지 못한다.
왜 더 신중하지 못했는지, 가슴이 아팠다.

나는 친구들의 인생을 인정해주고, 기리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가족들에게 누가 되었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나의 몰지각을 활자로 인쇄해서 배포하는 순간
내 친구는 씻을 수 없는 오해와 불명예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서운하고, 상처를 받는다면
안 쓰느니만 못하다.
마음 같아선 책을 모두 회수하고, 사죄를 하고 싶다.

우리는 서른의 나이에 아직도 성장하고 있고,
친구들간의 관계도 여전히 무르익는 중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친구들을 단정짓고 규정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죽은 인물의 자서전은 가감없이 써야하지만,
살아 있는, 그것도 한창 발전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나는 훨씬 더 신중했어야 했다.

그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본인에 대한 이미지와 가족의 기대치,
그리고 내가 서술한 모습 사이에서 엄청난 간극이 발견되기도 했다.
가족분들께 책을 전달하며 그들이 받게될 실망감을 상상하며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입사를 앞두고, 그래도 갚진 일을 하나 했다고 자축하고 싶었으나,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학교에 마지막으로 가서 짐을 정리하며, 다음 막을 준비했다.
공부는 안하고 <졸개인생>을 썼던 내 자리는 
말끔하게 두 묶음으로 정리됐다.
정리하니 이렇게 간촐하다.


책상 정리하듯이
내가 책 속에 너저분하게 벌려놓은 마음의 짐을 쓸어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책의 에필로그를 첨부하여 나의 마음을 다시 전하고 싶다.
비록 오해와 몰지각으로 점철된 책이지만,
오직 사랑으로 썼다는 것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에필로그 사랑의 편지
 
만약 우리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산자락에 은둔하는 처사, 선두는 사대부 성리학자, 왈구는 실용적인 실학자, 현우는 양반집 한량, 염따는 광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속세와 연을 끊고 도를 닦고 있을 것이고, 선두는 유학을 전파하며 고위직으로 승진하여 매우 바쁠 것이다. 왈구는 실학사상을 연구하고 있거나, 겁 없이 폭군에게 충언을 했다가 사형 당했을 지도 모른다. 현우는 한강에 배를 띄워 가야금 연주를 즐기고, 염따는 저잣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관객을 모아 줄타기를 선보이고 있을 것이다.

불과 2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우리는 모두 다른 생활 반경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엄청난 교집합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던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이 책을 쓰며 얻은 것이라면, 그 기적을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친구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인생을 곱씹으며, 커피숍 구석에서 혼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침대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다 우울해져 잠을 설치기도 했다. 알지 못했던 선두의 옛 고민들에 나도 괴로웠고, 왈구의 존경스러운 결단에 다시 감탄했다. 혼자의 힘으로 성취를 이뤄내는 염따가 대단했고, 현우가 나에게 끼친 영향을 살펴볼 때는 가슴 깊이 고마웠다. 퍼즐 조각을 모두 맞추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오듯이, 의미의 조각들을 합치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이다. 친구들의 인생은 마치 하나의 완벽한 예술작품 같이 감동을 전해주었다. 나의 얕은 통찰력과 졸필 때문에,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친구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의 부족함을 용서하길 바란다.

이 책은 친구들의 자서전이고, 나는 그들의 대필 작가이다. 단지 이미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받아 적는 과정이 없었을 뿐이다. 대필 작가로서 나름의 사명감과 친구로서의 사랑을 양분삼아 책을 마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작가, 장 프레보는 “사랑의 편지, 청년은 급하게 읽고, 중년은 천천히 읽고, 노년은 다시 읽는다.”라고 했다. 젊음을 급하게 보내는 것은 프랑스나 한국이나 매한가진가 보다. 나의 사랑으로 쓴 이 책, 급하게 읽었다면 노년의 지혜를 발휘해서 다시 처음부터 읽어봄이 어떨지.
   
2011년 겨울, 예술의 전당 앞에서
양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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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겨울여행 후기 by 양성준

친구랑 둘이서 3박4일 동안 
통영에 다녀왔다
자가용으로 가는 것을 다들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지만, 
"까짓거 맘대로 돌아다니자"라는 마음으로 연비가 무척 안좋은 친구차를 이끌고 출발.
전주에서 하룻밤 묵고 통영으로 갔는데도, 기름값은 총 15만원으로 예상보다 적게 나왔다.

서울에서 통영까지 한번에 날라가면 아쉬워서, 하루 머무른 전주
남자 둘이라, 제일 값싼 여관을 찾아갔는데 그곳은 바로
바로 환.영.여.관.

그러나 우리는 환영받지 못했다
귀신이 안나오면 이상할 것같은 분위기였다. 
새빨간 카페트, 이상하게 무성한 화초들, 을씨년스러운 도배, 아무리 닫아도 자동으로 끼이이익 열리는 문,
열쇠조차 없는 기묘한 시스템.... 우리가 자는 동안에 주인 아줌마가 몰래 들어와 우리 목을 깨물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경악케했던 것이 있으니, 바로 위! 생! 상! 태!
방에 비치되어 있는 물컵, 아아, 그 컵
이 정도다
컵 같은 것은 씻지 않는다.
커피를 타먹으려고 했으나, 컵의 상태를 보고 그냥 냉장고에 있는 요구르트를 먹으려고 했다.
요구르트를 까려는 순간!
방심했다. 유통기한의 공격 ㅠㅠ
여행의 첫날이 14일 이었는데, 유통기한이 3일이나 지났다
할수없이 생수병에 담긴 물을 먹으려고 했으나!
이미 생수병은 개봉된 상태.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
이런 여관의 이름이 환영여관이라니.....
우리가 체크아웃하고 나갈때, 주인 아줌마는 수건 두개만 들고 방을 새단장 하러 들어가더라.
결국 이불이나 청소 같은 것은 아예 안하고 수건만 갈아준다는 사실..

다음날 아침,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그 옆에 있던 전동성당, 경기전에 들렀다.
경기전을 둘러보는 몇 무리의 사람들이 가이드를 따라 다니길래, 우리도 같이 들었는데,
방문객들은 꼭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것들도 실은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이드 설명 없이 들으면 그냥 오래된 건물일 뿐

그리고 전주에 왔으니 비빔밥 한끼 먹으러 성미당으로 향했다
40년 전통의 성미당, 인터넷에는 악평도 많고 소문도 많았지만
음식은 맛있고, 서비스도 좋았다
우리는 만2천원짜리 육회비빔밥을 시켰다
지옥 같았던 환영여관이 있는 전주를 뒤로하고 통영으로 갔다.
2시간만에 도착한 통영.
먼저 강구안에 있는 나폴리모텔에 짐을 풀었다. 홍상수 영화 <하하하>에 나왔던 모텔이다.
통영을 여행한다면, 강구안에 숙소를 잡는 것을 추천한다.
동피랑이나 중앙시장, 남망산 조각공원, 여객선 터미널 등이 전부 근방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통영 자체가 워낙 작아서 어디나 관계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강구안이 그 중심인 것은 사실.

짐을 풀고 달아 공원에서 일몰을 찍으려 달려갔지만, 실패!
우리가 달아공원 정상을 향해 달려다고 있을 때, 이미 사람들은 일몰을 보고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모두 웃으면서, "끝났어요~"라고 일러주었으나, 끝까지 달려갔고,
일몰은 놓쳤지만,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었다.
일몰 직후의 달아 공원에서 본 정경

달아 공원을 나와서
유명한 오미사 꿀빵을 하나 사들고, 횟집 통구미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여친느님과 친구들을 주려고 사온 오미사 꿀빵은 미처 전해지지 못하고, 유통기한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통구미...하아 좋은 평이 많아서 들렸으나, 우리는 대실망이었다.
다 먹고 나오며 공짜로 뽑은 자판기 커피가 제일 맛있었다.
그러나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므로 뭐 좋아할 분들은 좋아할 듯도 하다.
우리는 단지,
내 친구가 해물을 잘 못먹고, 식당 내 온도가 춥고, 담배 필 곳도 없고, 무한 리필이라던 새우튀김은 아예 나오질 않고,
여러모로 안 맞아 떨어져서 더욱 실망이었다.

허탈하게 숙소로 복귀해서, 차에 실고 온 두대의 기타로 합주 삼매경.
우리의 몇 안되는 레파토리 중에 하나인 One Note Samba
(연주 중간에 나오는 나레이션은 "웃기려고" 한 것임을 알길 바란다. 혹시 이런 사람으로 오해할 까봐 무섭다ㅎ)
현우양성 - One Note Samba at 통영 바닷가 by poeticgypsy

기타를 몇 시간 동안 뚱땅거리다가 휴대폰으로 포커를 치고 골아떨어졌다.
기타치고 포커치는 것은 다 서울에서 할 수 있는데 왜 통영에서까지 그랬는지...
그래도 여행지에서 기타치는 맛이 쏠쏠했다

다음날 8시에 기상!
쿠크다스섬으로도 유명한소매물도에 가려고 여객선터미널에 갔으나, 배 시간이 안 맞았다.
우리는 배 시간 따위는 알아보지도 않고 막 간 것이다. 바보같은 놈들...
배 시간인 오전 11시까지 시간이 남아서 다시 숙소 근처의 동피랑 마을로 갔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간 동피랑.
대단하기보단, 소소하고, 사람사는 냄새를 맛볼수 있는 따뜻한 곳이었다.
동피랑 마을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강구안

다시 배 시간에 맞춰 여객선 터미널로 돌아가서, 소매물도행 배를 탔다
두명 왕복 비용이 5만원이 넘어서 놀랬지만, 후회는 전혀 없다.
소매물도에서는 이런 절경을 볼수 있기 때문에!
소매물도,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바로 등대섬

소매물도에 도착하면, 먼저 인근 가게에서 물이라도 한병 사서 올라가길 추천한다.
생각보다 높은 산길을 걸으며 얼마나 목이 마르던지...
그래도 사방에 펼쳐진 절경에 갈증을 잊으며 계속 탐방했다.
남해를 굽어보는 건방진 친구 녀석

환상적인 소매물도 탐방을 마치고, 뭍으로 복귀!

새우 소금 구이를 먹으러 '왕새우'에 갔다!
왕새우는 새우를 직접 양식하며 바로 살아있는 새우를 소금에 구워준다
그러나 겨울은 제철이 아니라, 냉동 새우였다.
새우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 냉동 새우도 새우다.
약 5만원 정도 였던 식사. 대만족이었다.
그리고 새우 튀김도 한접시!
4천원이면 새우 라면도 나오는데,
우리는 새우 소금구이와 튀김만으로 배를 채우고 
아주 만족스럽게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복귀해서는 또 기타 삼매경!
이번에 한 것은 Common의 Be(Intro)
친구가 씻고 있는 동안 베이스 라인을 얼떨결에 해보다가
친구와 머리를 싸매고 코드랑 라인을 전부 땄고, 나름 구성도 짜서 편곡했다.
그러나 나의 허접한 기타 실력 때문에 아주 하급의 퀄리티로 나왔다
단지, 여행지에서 친구와 기타 치는 맛이 아주 일품이었으므로, 그것으로 위안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레파토리가 생겼다는 성취감!
차차 연습하면 들을만 하겠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나레이션은 웃기려고 한 것이다. ㅎㅎㅎ 오해마시길. 이런 얘기 하는 것도 정말 곤욕..)
현우 양성 - BE 라이브 at 통영 바닷가 by poeticgypsy

손이 저릴 때까지 연주를 하다가 골아 떨어졌다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한려수도를 한번 보기로 했다.
통영은 정말,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미륵산에서 내려다본 한려수도. 저기 어디쯤에서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하셨단다.

섬들이 흩어져 있는 남해안의 아름다움이란!
미륵산에서 호기롭게 친구와 한방 찍고 하산해서 서울로 출발!
웃고 있는 얼간이들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도로가 막혀서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
그 동안 Sound Cloud로 몇개의 헛소리를 녹음했지만, 그건 차마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병맛이 넘쳐서
고이 간직하기로 다짐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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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노래를 젤 잘하는 사람 by 양성준

음악잡지에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100명의 보컬을 꼽으면 꼭 1위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다

보컬 랭킹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노래를 '잘'하는 순위가 어디 있겠냐만!
오죽하면 1위에 꼽히는가는 한번 생각해볼 만 하다
롤링 스톤지에서 당당히 역사상 1위 보컬리스트로 뽑히신 아레사 여사님(2위는 레이 찰스)
이름만 들어도 울고 싶은 마빈 게이와 내 사랑 제임스 브라운을 비롯해 스티비 원더, 샘쿡, 오티스 레딩 등이 보인다
10위권 내 백인은 존 레논과 밥 딜런, 엘비스 프레슬리 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 순위는 아무 의미 없다. 잡지사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내는 심심풀이 땅콩일뿐


이렇게 거장들을 이기고 1위에 등극할 정도로 사랑받는 보컬리스트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독 잘 안알려져 있다.
하긴  존 레논이나 밥 딜런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안알려져 있으니...
혹시 모른다. <나는 가수다>에서 누가 아레사의 노래를 커버하면 확-붐이 일지도

아레사 프랭클린의 가장 잘 알려진 별명이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이다
소울은 음악 장르이기도 하지만, 중의적으로 정말 노래 호소력이나 감성, 때로는 진정성, 자부심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울의 여왕이라면, 진짜 혼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여왕마마라는 뜻인데
그런 그녀에 대해 레이찰스가 자서전에서 재미있는 말을 했다.
친구에게 강탈한 레이 찰스의 자서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Gladys Knight도 노래 잘해. Barbra Streisand도 엄청 잘 불러. Chaka Khan같은 어린 가수들도 장난이 아니야. 하지만, 이 레이 찰스님의 말을 믿어. 아레사 프랭클린이 최고야
일단, 샤카 칸같은 고참 가수를 어리다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한번 놀라고, 다 제치고 무조건 아레사가 최고라는 극찬에서 또 놀란다. 아, 그리고 그 아래에는 비틀즈를 60년대에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 한번도 비틀즈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에서 또 놀란다 ㅎㅎㅎㅎㅎㅎ 그래도 몇곡은 커버했단다. 

이렇게 사랑받는 보컬이지만
아레사를 처음 들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금방 실망할 수도 있다.
42년생인 이 보컬은 워낙 슈퍼 히트곡이 많고, 아주 오랫동안 노래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고 하면, 나이가 들어서 부른 노래들을 듣고, 기대 이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레사느님도 사람인지라 전성기가 지나며 아름다운 목소리가 조금은 변했고
급격하게 체중이 불었고, 췌장암으로 투병하기도 했다 ..ㅠㅠ
이렇게 아름답던 소녀도
나이가 들었다

현재는 췌장암 투병의 여파로 잠시 쉬고 있지만
작년에도 앨범을 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컴필앨범으로, 가장 최근 솔로앨범은 2008년)
현재도 역시 최고의 보컬이지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던 그 진가를 느끼기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 진가를 볼 수 있는 2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히트곡은 열거해도 끝이 없지만, 내가 그녀의 진가를 느낀 것은 히트곡이 아니다

A Change Is Gonna Come - 이 곡은 Sam Cooke의 원곡으로 워낙 유명한 메가히트곡이긴 하다. 오티스 레딩이나 푸지스(Fugees)도 커버했고, 여러곡에서 샘플로 쓰였다. 개인적으론 데뷔한지 얼마 안된 이때 가장 아름다운 톤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울림을 길게 끌고 가는 곡의 특성이 아레사와 특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Amazing Grace - 이것은 남부 캘리포니아 교회에서 라이브로 가스펠을 부른 것이다. 이 노래는 정말 최고다. 이 노래를 귀에 꼽고 딱 10분 들으면 왜 아레사가 소울의 여왕인지 누구나 알 것이다. 즉흥으로 내뱉은 블루스 스러운 관객과의 교감, 미칠듯한 에너지...지금까지 젤 사랑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 어머니는 음악을 안 좋아하신다. 그래도  이 노래만은 꼭 들려드리고 싶어서, 강제로 어머니를 내 방으로 모시고 왔다. 그리고 11분이나 하는 이 라이브 노래를 나란히 앉아서 들었다. 어머니는 아레사의 노래를 들으시며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나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아레사도 울었다. 우왕 ㅠㅠ


먼저 A Change Is Gonna Come



그리고 대망의 Amazing Grace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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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by 양성준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밀려들어온다. 며칠 전, 빽빽한 콩나물 상자에서 한 움큼을 들어 올리던 시장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선택받지 못한 콩나물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누가 우리를 들어 옮겨주지 않을까. 위에는 좌우로 흔들리는 손잡이가 있을 뿐이다. 그 아래에서 우리도 수초처럼 이리저리 쏠리고 있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우리는 물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지만,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닌가 보다. 서로에게 짓눌리고 있는 이 기막힌 상황을 반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금과 비슷한 광경을 전쟁영화에서 본적이 있다. 낙하산가방을 메고 손잡이 아래 나란히 앉아 있다가, 차례가 되면 마지못해 뛰어내렸다. 목적지로 향하는 수송기 안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까. 마지막 것처럼 앉아서, 마지막인 것처럼 껌을 씹었다. 두두두두. 시끄러운 프로펠러의 소음 사이로 낙하 방송이 나오고 파란 불이 들오면, 낙하산을 메고 문 앞에 줄지어 섰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얼굴을 강타하는 순간, 맨 앞에 있는 사람부터 세상으로 뛰어 내렸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공중에 뿌려진 민들레씨앗들은 아득하게 부유해 내려갔다. 임무를 마친 수송기는 창공을 부드럽게 선회해서 돌아가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두두두두. 굉음을 내며 달린다. 그 틈으로 훌쩍이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끼어든다. 어떤 젊은 남자가 고개 숙여 울고 있다. 그는 이따금씩 어깨를 들썩거렸다. 어떤 슬픈 사연이 저 사내를 저렇게 흔들고 있는 것일까. 사연이 어디 한두 개 뿐이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여기 누구든 마음먹으면 바로 울음을 터뜨릴 수 있을게다. 저 치는 단지 몇 가지 일들이 갑작스럽게 겹쳐서 당황해 하고 있는 것이다. 딱하긴 하지만 어느 개그맨의 말이 귀에 엇돈다. 아마추어 같으니. 간혹 지하철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보면 예외 없이 젊은이들이다. 지긋한 할아버지나 인생9단의 아줌마는 공개적으로 우는 법이 없다. 그들이 지하철에서 우는 날은 분명 핵전쟁이 발발하거나 지구가 멸망하는 날일 것이다. 사실 저 남자의 인생에서도 이렇게 지하철에서 우는 것도 앞으로 두세 번뿐이리라. 이러한 생각에 딱한 마음도 약간 가라앉았다.

“에구구, 젊은 양반이 뭔 일이래”
“쯧쯧”

  노약자석에서 한마디씩 나왔다. 나는 갑자기 위로의 한마디라도 하고 싶어졌다. 손수건이라도 건넬까. 아니면 그냥 힘내라고 말해줄까. 힘내라고 말하면 힘낼 수 있을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차마 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같은 칸에 있는 수많은 눈물의 증인들은 한 마디 증언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있을 뿐이었다. 그의 주변에 비눗방울 같은 막이 둘러쳐져 있는 것 같았다.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을 자신이 없었다. 혹, 펑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다. 답답했다. 서로 말도 못 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다니. 참 답답했다.

  남자 주변의 사람들이 이제 문 앞에서 낙하 준비를 하고 섰다. 뛰어내리기 전에 힐끔 그가 있는 쪽을 살핀다.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것일 게다. 저렇게 울다가 내릴 곳을 지나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저 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우리는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는데, 앞을 볼 수가 없다. 정면에는 두꺼운 철벽이 있고, 그 벽 너머에 앉아있는 한 명만이 앞을 볼 수 있다. 철길은 그 기사의 발치서부터 하늘까지 이어져 있을 게다. 철길은 분명 둥근 땅을 껴안듯 찰싹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철길의 긴 팔 위를 소리 지르며 달리고 싶다. 나 자신도 저 남자마냥 처량하게 느껴진다. 네모난 철로 된 통에 갇혀서 멍하니 서있는 모습이란.

  삐이이익. 예고 없이 금속성 굉음이 울리고, 내 시야는 다시 네 귀퉁이에 갇힌다. 현기증이 느껴진다. 유일한 이정표인 창밖의 풍경마저 읽기 전에 뿌연 배경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달리는 열차의 주변에는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찰나의 조각들만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훌쩍 거리는 소리가 잦아진다. 딱한 친구 같으니. 어느새 안내 방송이 익숙한 지명을 말하고 있다. 나도 문 앞에서 서서 그 이를 다시 한 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상을 향해 낙하를 하고, 지하철은 우는 남자를 데리고 주저 없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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